나의 이모부----- 울산 변호사 이민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1-1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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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를 만나러 이번 주 토요일에 서울가는 새벽 기차를 끊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갑인 이모부는 6. 25.동란으로 가족을 잃고 친척집에서 힘들게 눈칫밥을 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모를 만나서는 너무 없는 형편에 가족을 위해 열사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젊음을 보냈고 퇴직하고는 70대 초반인 3년전까지도 슈퍼를 하면서 자녀 넷을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이제 조금 살만 하다고 하면서 얼마전 울산에도 이모 손을 잡고 내려오셨기에 회도 사드리고 좋아하시는 막걸리도 받아 드렸다.
그런데 얼마전 병원에 갔더니 네군데나 말기암이 발병하였다는 진단을 받고 오신 후부터는 갑자기 거동도 불편하신 형편이 되어 버렸다.
보험이 들어있는데도 병원비 많이 나올까 걱정하고 죽은 뒤 이모를 걱정하는 영감이 다 된 이모부
전화를 걸어서 위로를 드렸더니 내 얼굴 한번 꼭 보고 싶다고 하셔서 올라가게 되었다.
이모부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 하시면서 살아 온 인생을 돌아보며 많이 애통해 하시는 듯 하였다.
혼자 산책을 하면서 이모부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해드려야 하나 궁리해 보다가 결국 이런 말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모부,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자랑스러워요.이모부는 대통령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에요. 이모부의 두 맨손으로 자식들을 다 잘 키웠고 이모부가 해야 할 의무를 잘 완수하셨어요. 이제 마음 편하게 가지시고 가시는 순간까지 더 아프지만 마세요.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나면 다음은 나이 순서대로 우리 어머니, 그 다음은 이모, 그리고 저도 세월이 흘러 이모부를 따라 가게 될거에요. 그때까지 이모부를 항상 기억할게요."
울지 않고 끝까지 말을 다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올라가면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갑인 이모부는 6. 25.동란으로 가족을 잃고 친척집에서 힘들게 눈칫밥을 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모를 만나서는 너무 없는 형편에 가족을 위해 열사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젊음을 보냈고 퇴직하고는 70대 초반인 3년전까지도 슈퍼를 하면서 자녀 넷을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이제 조금 살만 하다고 하면서 얼마전 울산에도 이모 손을 잡고 내려오셨기에 회도 사드리고 좋아하시는 막걸리도 받아 드렸다.
그런데 얼마전 병원에 갔더니 네군데나 말기암이 발병하였다는 진단을 받고 오신 후부터는 갑자기 거동도 불편하신 형편이 되어 버렸다.
보험이 들어있는데도 병원비 많이 나올까 걱정하고 죽은 뒤 이모를 걱정하는 영감이 다 된 이모부
전화를 걸어서 위로를 드렸더니 내 얼굴 한번 꼭 보고 싶다고 하셔서 올라가게 되었다.
이모부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 하시면서 살아 온 인생을 돌아보며 많이 애통해 하시는 듯 하였다.
혼자 산책을 하면서 이모부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해드려야 하나 궁리해 보다가 결국 이런 말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모부,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자랑스러워요.이모부는 대통령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에요. 이모부의 두 맨손으로 자식들을 다 잘 키웠고 이모부가 해야 할 의무를 잘 완수하셨어요. 이제 마음 편하게 가지시고 가시는 순간까지 더 아프지만 마세요.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나면 다음은 나이 순서대로 우리 어머니, 그 다음은 이모, 그리고 저도 세월이 흘러 이모부를 따라 가게 될거에요. 그때까지 이모부를 항상 기억할게요."
울지 않고 끝까지 말을 다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올라가면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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